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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호] 대한민국에서 사회복지사로 살아가기 (화성시서부종합사회복지관 총무과장 신태훈)
관리자(직원전체) │ 2025-05-27 HIT 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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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대한민국에서 사회복지사로 살아가기
- 내가 발견한 사람, 내가 소망하는 사회복지 - 화성시서부종합사회복지관 총무과장 신태훈 2013년 5월 3일 서울에 있는 노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를 처음 시작했다. 5월 1일이 근로자의 날이기에 본래 5월 2일에 입사를 했어야 하나, 최종 합격자의 갑작스러운 자진 임용 거부로 인해 예비 합격자였던 내가 급히 채용된 것이다. 사실 나는 첫 직장에 입사하기 전까지 이력서를 무려 50개 가까이 작성했고, 그중 3분의 1도 되지 않는 곳에서만 서류에 합격해 면접에 응시했다. 하지만 모두 불합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교 4년을 졸업하고 동기들과 달리 뒤늦게 군에 간부로 입대했고, 약 40개월의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왔을 때는 이미 28살 11월의 늦가을이었다. 그때부터 사회복지사 1급 자격시험 공부를 시작했고, 두 번의 탈락을 딛고 세 번째 도전 끝에 합격해 29살부터 취업을 준비했다. 이미 비슷한 또래의 선생님들은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었기에, 나이가 많았던 점과 군대라는 다소 경직된 조직 경험이 면접에서 부정적으로 비춰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운이 좋게 정규직으로 취업하게 되었고,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사회복지사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대학교 4년 동안 사회복지를 공부했지만, 사실 나는 사회복지가 무엇인지,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내 안에 명료한 어떤 정리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오래된 전통 있는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고, 그 당시 국내에서 모범이 되는 좋은 종합복지관에서 실습했으며, 학교프로그램을 통해 전공 선택과목으로 미국에서도 실습을 해봤다는 개인적인 자부심 정도로 이 일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내가 마주했던 사회복지 실천 현장은 그런 자부심이나 나의 배경보다는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일상이 대부분이었다. 무엇보다 너무 많은 서류와 시간을 쪼개서 과업을 감당해야 하는 업무의 양적 부담이 컸다. 더욱이 경직되고 보수적인 조직의 분위기와 종종 지방에 있는 법인 농장에서 해야 될 노무적인 일 등은 다소 불편함이 있었지만, 군 조직 외에는 다른 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크게 어렵거나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내게 이것은 직장 생활의 과정 일 뿐, 사회복지사로서의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복지관에서 나의 주 업무는 재가복지사업 담당자로 주로 지역의 취약계층에게 매일 도시락 30~40개 전달, 주2회 밑반찬 75개 배달, 주2회 세탁물 수거 및 배송, 동절기에는 주 2회 국 배달 등을 하는 것이었다. 더운 여름날이면 내가 주로 운행했던 작은 경차와 내 몸은 각종 음식 냄새와 땀 등이 섞여서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퀴퀴한 그런 냄새가 진동했다. 매일 마주하는 일상에서 몸은 고되고 늘 피곤했지만, 그래도 그것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이것 역시 단순히 물건을 전달하고, 일지를 쓰고, 필요한 예산을 신청해서 그것을 집행하는 정도의 사무적인 일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느 정도 첫 직장생활에 적응이 되었던 8월 초 무더운 어느 여름, 그날따라 비가 엄청 많이 왔다. 그 날도 어김없이 경차를 타고 높은 지대에 계신 어르신 댁에 도시락을 전달하기 위해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좁고 가파른 언덕길이 많은 지역 특성상 어르신 댁 앞에 차를 대는 것이 어려워 가급적 근처 빈 공터에 주차를 하고 어르신 댁까지는 도시락을 들고 직접 갔었다. 평소 어르신께서 댁에 안 계신 경우가 많아, 미리 약속된 찬장에 도시락을 두고 오곤 했는데, 그날은 어르신께서 우산을 쓰고 문 앞까지 나와 계셨다. 왜 나와 계시냐고 여쭤보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여기까지 잘 올라 올 수 있을지 걱정되어 나오셨다면서 고생했다고 하시며 손수 도시락을 받으셨다. 나는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때 그 장면이 내 마음 한 곳에 오롯이 사진 한 장처럼 남아 있다. 그날 그 일이 어떤 특별한 사건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어르신이 기다렸던 것은 도시락이 아니라, 어쩌면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나였을 수도 있겠구나.’ 그 날이 내가 사회복지를 하면서 처음으로 ‘사람’을 발견하게 된 날이었다. 그 후 어찌하다 보니 좋은 기회가 생겨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학업의 사정 등에 따라 종합사회복지관 한곳을 짧게 거쳐서 강남에 있는 노인복지관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직장 생활은 내가 첫 직장에서 경험했던 모든 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매일 만나는 어르신들의 상당수는 소위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를 갖춘 분들이었다. 그들이 요청하고 원하는 욕구의 주는 일상의 의식주 보다는 배움과 노년의 새로운 역할 찾기였다. 서울 안에서도 강남 한복판에서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나의 직업을 떠나서 내게 나름 큰 즐거움이 되었던 것 같다. 매일 아침마다 별다방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저녁에는 종종 동료들과 가까운 맛집에서 술 한잔 기울이는 것은 직장인으로서 충분히 만족 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복지사로서 내가 이곳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내게 주어진 과업을 어떻게 풀어 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내 안에서 명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곳에서의 직장생활은 내 사회복지 경력의 대부분이었기에 나는 노인복지관에서 진행되는 모든 사업의 실무부터 관리까지 다 경험 할 수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참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게 되었고, 종종 그분들이 살아오신 각자의 이야기도 때로는 진지하게 들을 수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회적 지위도 있고 경제적 여유도 있지만, 그 분들의 삶의 과정은 다른 여느 누구처럼 한 순간도 쉽지 않았고, 지금까지 주어진 인생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대부분 이야기의 결론이었다. 무엇보다 이제는 자식들도 독립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 때, 홀로 남겨진 노년의 삶은 따뜻한 돌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지역에 있는 많은 경로당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러 갈 때, 내가 찾아가는 그 시간에 맞춰서 어떤 어르신은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 부침개를 부쳐두시고, 어떤 분은 같이 식사하자며 밥상을 차려두기도 하셨다. 무엇보다 그 복지관도 매일 노동이 행해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기에 때로는 어떤 상급자 때문에, 때로는 어떤 부당한 일 때문에, 또 때로는 어떤 무리한 업무 때문에 힘들고 지치고 어려웠던 순간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시간을 함께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늘 곁에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복지관의 미션처럼 ‘어르신의 꿈을 품고 함께 이루는 행복한 세상’에서 그 ‘함께’의 힘이 참 컸던 것 같다. 나를 포함하여 그곳에서 무려 3커플이나 짝을 만나서 6명 모두 결혼까지 했으니 그 증빙은 이걸로 충분하지 않나 싶다. 이렇게 나는 그곳에서도 결국 ‘사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대학원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거주지도 경기도로 옮기게 되면서 나는 화성시에 있는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약 2년 전부터 총무과장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전과 다른 점은 이제는 직접적으로 만나는 이용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사업의 체계나 운영의 방식이 그동안 내가 주로 경험했던 노인복지관과는 다소 다른 사회복지관만의 환경은 일부 낯설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과거 내가 만났고, 함께 일을 했던 총무과장들은 내게 어떤 모습이었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분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안 된다’였다. 또한 언제나 기관장을 비롯한 최고관리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변인’의 역할이 컸던 것 같다. 때로는 ‘군기 반장’ 같은 역할도 있었다. 나도 막상 이 일을 해보니 생각보다 안 될 일이 많고, 기관의 운영상 기관장을 비롯한 최고관리자의 입장을 내・외부로 전달하는 대변인의 역할이 분명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서 총무과장이 ‘안 된다’라는 말 보다 ‘된다’라는 말을 더 많이 하고, 또 기관장이나 최고관리자의 입장 뿐 만 아니라 평직원의 입장도 잘 전달한다면 조직은 어떻게 될까? 엉망진창이 되고, 무질서의 혼란의 기관이 될까? 내가 그동안 평직원 입장에서 경험했던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때 그 일이 될 수 있었다면, 그 때 그 직원의 입장이 잘 전달이 되었다면 기관은 더 일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을 것이고, 그 직원은 그 기관에서 더 오래 근무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러한 전제는 우리가 법과 규정을 철저히 지킨다는 바탕 위에서 성립하는 이야기다. 요즈음 업무를 하면서 많이 고민을 하고 공부를 하는 지점은 우리가 적용받는 법적 신분에 대한 부분이다. 대부분의 사회복지설이 민간위탁 구조 속에서 지자체의 관리 감독을 받고 있다. 그러나 시설을 관리 감독을 하는 공무원들과 다르게 민간 시설 사회복지사들은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고 있다. 때로는 지자체의 규정과 근로기준법이 충돌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시설 내 운영을 할 때 과거의 어떤 리더십은 이런 법적 사항의 준수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업무의 성과를 더 우선시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인사총무의 업무에서 ‘고용과 임금’이 우선이 되었다면, 지금은 ‘존중과 안전’이 더 우선이 되는 것이다. ‘존중과 안전’이 철저하게 선행이 되지 않으면, 그 어떤 경우에도 ‘고용과 임금’은 존재 할 수 없는 것이다. 기관은 직원들에게 편안하고 안정적인 근로환경을 법적 테두리 안에서 제공하려고 늘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서비스 질도 훨씬 높아지는 것이다. 절대 순서가 뒤 바뀌면 안 된다. 결국 이러한 고민이 왜 시작되었는지, 또 앞서 이야기한 나의 역할에 대한 생각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결국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역시 또 ‘사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투표권을 가지게 되고 선거를 하는 대통령 선거가 개인적으로 6번째를 앞두고 있다. 그 6번의 대통령 선거 중 이번이 전임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벌써 2번째 조기 대선이라는 점은 정치적 입장이나 어떤 사안에 대한 해석을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하고 슬픈 일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이번 선거를 앞두고 상식과 원칙의 나라를 위해 각자 소망하고 바라는 것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또한 나도 이제 이 업계에서 일을 한지 약 12~13년이 되고 있다. 나보다 경력이 훨씬 많은 선배들이 현장에서 한참 일을 하고 있고 있지만, 또 기관 내에서 보면 나도 이제 기관장이나 최고관리자 외에는 대부분 후배이기도 한 중간관리자이다. 이에 다갈 올 새로운 시대를 생각하며 또 우리 사회복지계 및 사랑하는 사회복지사 동료들을 생각하며 크게 3가지 정도의 나의 개인적인 바람을 적으며 이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첫째, 사회복지사가 많이 필요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매년 정부 부처의 신년 업무보고를 보면 자주 등장하는 언어가 ‘복지사각 지대 해소’, ‘취약계층 지원 확대’, ‘촘촘한 복지 환경 구축’ 등이다. 모두 필요하고 또 적극적으로 지원 및 확대되어야 할 중요한 의제이다. 그러나 이 중요한 의제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복지사가 필요한 것이다. 사회복지사의 수는 그대로인데, 해야 될 일만 늘어난다면 결국 그 일의 서비스 질은 담보 할 수 없는 것이다. 과거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학부 시절 미국에서 실습을 하면서 가장 크게 인상 깊었던 것은 사회복지사가 국민들의 일상 속에서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법원 갈 때도, 또 학교에서도, 그리고 병원 안에서도 항상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있고, 국민들은 그 사회복지사를 통해 해결해야 될 많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꼭 경제적 취약계층만 사회복지사를 만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서울 강남에서 경험했던 그 실천 현장처럼 사회복지사는 경제적 차이를 떠나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사회복지사를 더 확충하겠다.’ ‘민간 위・수탁시설의 사회복지사 정원을 적극 확대하겠다.’ ‘복지시설 외에 학교, 병원, 각종 정부 부처에 안정된 사회복지사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 이런 의제가 새로운 정부에서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둘째, 민간위탁시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주(主)의 역할을 찾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사회복지시설의 대부분은 정부 지자체가 보조금이라는 재원을 가지고 민간 사회복지법인 등에 위・수탁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부 보조금 사용의 공정성・명확성・투명성이라는 과제를 수반하게 되고, 그 보조금을 가지고 시설을 운영하는 민간 법인은 책임감을 가지고 시설을 잘 운영해야 한다. 또한 지자체는 당연히 법적 테두리 안에서 관리・감독을 잘 해야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이 자칫 다르게 해석이 되어서 마치 보조금을 주는 지자체가 운영의 주(主)라고 오인하는 경우도 많다. 사회복지사업은 원래 정부가 헌법에 보장된 국민들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직접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에는 반드시 전문성이 필요한 바, 그 일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민간 법인에 이것을 위임하고 부탁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조금은 말 그대로 시설의 운영을 보조하는 역할이지, 이 보조금 자체가 시설의 주(主)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이 지자체의 요구를 늘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문성, 창의성을 바탕으로 오히려 이 지역사회에 필요한 것을 지자체에 요구하고, 그러한 요구가 충족 될 수 있도록 지자체와 동등한 입장에서 협의하고 조정하는 자신감이 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부도 할 수 없는 일을 4년 이상의 학습과 자격시험을 통해 그 전문성을 배우고 얻어서 수행하는 사회복지분야의 뛰어난 전문가임을 항상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셋째, 우리는 ‘사람스러운 복지’를 하는 사회복지사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할아버지는 농경시대를 살았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산업화시대에서 고도의 경제 성장을 경험했을 것이고, 나는 초등학교 때 인터넷과 컴퓨터를 처음 접하면서 정보화시대를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입사하는 신입직원들은 AI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오면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당연히 크게 진보하였지만, 그 만큼 사람이라는 존재는 이제 이전시대 만큼 전면에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꼭 사람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과 환경은 이제 충분한 것이다. 요즘은 복지관에 오는 교육 관련 공문 중에는 ChatGPT 관련 내용이 심심치 않게 많음을 보게 된다. 사회복지사는 환경의 변화에 능숙하게 적응 할 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것도 업무상 꼭 필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ChatGPT를 통해 설득력 있고, 논리적인 보고서를 써서 외부 펀딩 등을 잘 받을 수 있다면 적극 권장되어야 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실천 현장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지역 주민 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들에게 작은 희망을 전하는 것은 결국 그 ChatGPT를 통해 그 계획서를 작성한 그 사회복자의 따뜻한 손길이고, 오늘도 뛰고 있는 그 사회복지사의 심장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의 직업은 AI 시대에 어쩌면 마지막 남은 가장 사람스러운 직업이 아닐까 싶다. 사회복지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종종 ‘사회스러운 복지’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사회스럽다’라는 말 속에는 ‘사람스럽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결국 사회복지는 ‘사람스러운 복지’인 것이다. 때로는 사람 때문에 힘들고 어려워도 결국 사람 때문에 힘이 나는 경기도의 모든 사회복지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