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사회복지사협회

칼럼

[제47호] 오늘도, 당연한 일상을 다시 묻다.(리을미음 대표 김난미)

관리자(직원전체) │ 20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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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당연한 일상을 다시 묻다.

: 기후 변화를 넘어서는 연결의 힘

 

리을미음 대표 김난미

 

 2026년 4월 20일, 마흔여섯 번째 장애인의 날을 맞았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당연한 일상,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참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아직은 그 당연함이 선언처럼만 읽힌다. 모두가 누리는 사회라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직 한참이다 싶다.

 

 이번 칼럼을 준비하며 논문과 기사들을 읽다가, 2023년 대구를 덮친 태풍 카눈의 피해 사례에 시선이 머물렀다. 당시 200mm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마을은 온통 물바다로 변했고 길과 논, 집의 마당을 구분할 수 없도록 흙탕물이 범벅이 되어 대피령이 내렸다. 하지만 누구도 청각장애인 A씨가 낙오된 것을 몰랐다. 위험 방송을 들을 수 없었던 그가 위험을 감지하고 혼자 대피하다가 입은 피해였다. 또 한 사람은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태풍으로 인해 택시 운행이  더 이상 어렵다는 이유로 집으로 가려면 300m 정도를 더 가야 하는 산 입구에서 택시를 내려야 했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B씨는 순식간에 산자락으로 떨어졌고 물보라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결국 B씨는 다음날 하천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안내 방송뿐 아니라 문자 서비스가 병행되었다면, 혹은 재난 상황에서 누구나 즉시 떠올릴 수 있는 안전한 대피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당연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아 발생한 재해 피해라면, 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 어딘가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나? 

세계기상기구(WMO)는 2025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state of the global climate 2025)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에는 지구 에너지 불균형을 처음으로 주요 기후 지표 중 하나로 포함시켰고, 그 결과 관측 역사상 가장 불균형 상태에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제 기후변화는 추상적 미래 위험이 아니라 폭염, 가뭄, 산불, 집중호우로 대표되는 기후재난 4종 세트 형태로 이미 우리의 일상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코 평등하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기후 불평등 앞에 장애인의 삶도 자유롭지 못하다. 갈수록 거세지고 폭력적인 기후재난의 위협으로부터 그들의 삶을 지켜낼 최소한의 안전 로드맵과 돌봄을 위한 생태계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복지 의제다. 

 

 의제를 마주한 지금부터는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라는 분명한 질문이 남는다.

나는 이처럼 막막한 순간이면, 타인의 시선과 지혜가 담긴 사유에서 방법을 찾곤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앎과 삶 사이에서(조형근 지음)’에 소개된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구조적 부정의’라는 개념을 통해 보통 사람이 세계의 고통을 만드는 데에 어떻게 연루되는지 성찰한다. 구조적 부정의란 어떤 것일까? 이를테면 기후를 망치겠다거나 특정한 사람들을 차별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악인이 흔할까? 그저 편리한 것이 좋고, 친숙한 사람들과 일하고 교류하고 싶다는 평범한 욕망이 모여 풀기 어려운 부정의를 만든다는 것이다. “세상이 이런 걸 어떡하느냐?”라고 우리는 모른 체할 수 없다. 이런 세상이 되기까지 우리 각자의 기여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책임의 사회적 연결’을 제안하고 있다. 사회구성원들이 책임을 공유하고, 부정의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집단행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 집단행동의 길에 첫 걸음을 내 디딘 것과 같다는 저자의 말에도 격한 공감을 더하며 나의 상상을 덧붙인다. 

 

 올해 법제화가 되면서 활력이 더해진 주민자치회와 마을총회, 주민모임, 다양한 방식과 주제로 열리는 커뮤니티 공간, 일상의 장 어디에서든 책임의 사회적 연결은 일어날 수 있다. 기후 위기로부터 일어나는 재난이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는데 머물러 있지 않고, 서로를 연결해가는 사회적 연결로 궁리가 시작되길 바란다.

 

 여기에서 더 중요한 건, 기후재난 대응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은 기후변화와 재난 대응 과정에서 물리적, 사회적 취약성을 마주함에도 불구하고, 체화된 경험과 상호의존적 삶의 방식을 통해 축적된 '실천적 지혜'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지혜와 통찰은 기후변화와 재난에 중요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잠재력이라는 어느 연구자의 글에 나도 힘을 더한다. 지역 곳곳에서 기후변화 대응의 논의가 그들의 삶에 박힌 일상적 위협으로부터 체화된 역량과 연결될 때, 우리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지속 가능한 거버넌스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우리 모두는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로서 연결과 돌봄의 서사가 필요하다. 기후 위기로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이 돌봄의 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기후 위기 앞에서는 누구나 취약해질 수 있고, 누구나 타인을 돌보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노력, 서로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

 

 ‘0%, 고속버스가 없다’라는 기사의 장애인 이동권 문제와 기후재난은 다른 이야기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후재난과 이동권은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권리, 필요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일상적 교통수단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는 재난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모두의 삶에 가장 기본적 조건이다. 하지만 올해로 13년째 시외고속버스 탑승 권리 요구에 여전히 명확한 변화는 더딘 상황, 이런 제한은 결국 기후재난 앞에서도 누군가를 더 쉽게 배제하는 사회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연결지점에 우리가 기여할 몫이 있고, 장애인만의 목소리가 아닌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로서 서로의 연결 감각이 새로운 서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공감의 방향'이다. '공감의 반경(장대익 지음)'에서 "기후재난으로 누군가가 다치거나 생명을 잃었다는 기사를 접하면 모두가 아파하며 공감하지만 그 이상의 변화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내 가족, 내가 속한 집단, 나와 닮은 삶에 더 공감하는 우리의 공감이 강렬하지만 짧게 지나가는 감정이기 때문에 변화를 만들어내긴 어렵다는 것이다. 불평등한 기후 위기 시대 공감의 화살표는 달라져야 한다. 나로 향하는 공감이 아닌, 나로부터 뻗어나가는 공감의 방향이 필요한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는 ‘당연한 일상,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공감의 반경을 넓혀내기 위한 현재 우리 사회의 의지와도 닮아있는 이야기다. 강렬하지만 짧게 지나가는 감정이나 선언만 해서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삶으로 공감의 반경을 넓혀가기 위한 협동의 장이 열려야 한다.

 

 누군가에는 당연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왜 당연하지 않은지를 함께 물으며 바꿔가야 한다. 이는 단순 체험이나 서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넘어서는 시작이 될 것이다. 우리 삶 속 관계의 폭을 넓혀내고, 기후재난 시대에 필요한 단단한 대응과 회복할 역량으로 채워질 것이라 믿는다. 서로를 돌보는 관계이자 만남을 잇는 연결자로서 지역사회를 엮어 가는데 우리의 몫을 더한다면 어제보다는 조금 더 안녕한 사회,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살만한 세상으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당연한 일상을 다시 묻는다.

 

*이승은. 2025. 기후위기와 장애의 사회적 구성(일상 재난 속 역량 제한과 적응 전략), 서울대학교  

*에이블뉴스. 2023. 태풍 카눈에 희생된 두 장애인, 안전사고 아닌 재해 피해 

*비마이너. 2026. 0%, 고속버스가 없다

*아이뉴스24. 2026. 지구 에너지 균형 무너져->수백만명 피해 [지금은 기후위기]

*장대익. 2025. 공감의 반경. 바다출판사 

*조형근. 2026. 앎과 삶 사이에서. ㈜한겨레엔